두구동의 유래
두구동의 유래
두구동은 1740년 간행한 《동래부지》에 의하면, 북면 두구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동래부에서 30리 거리에 위치한다고 한다. 조선후기 두구리의 명칭이 마을 명칭으로 아름답지 못하다고 하여 두구리(杜邱里)로 기록되었다.
1914년 부ㆍ군 통폐합 때에 동래군 북면 소속이었으며, 1963년 부산시에 편입, 동래구 북면출장소 관할로 있다가 1966년 리(里)제 폐지에 따라 두구동이라 칭하게 되었다. 1975년 동래구의 직할동으로 있다가 1988년 동래구에서 금정구로 분구되자 금정구 관할이 되었다.
두구동의 명칭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전 동래의 읍지를 물색할 때 초읍동에 들러 산세가 좋고 지리가 음양에 맞다하여 우천 초(抄)해 놓고 이보다 좋은 곳이 없나 하고 다니던 중, 두구동의 지세가 뛰어나 정하려 하였으나, 현 동래읍을 보고는 동으로 학소대(鶴巢臺)와 남으로 대조포란형(大鳥抱卵形)이 서울 장안과 견줄만하여 이곳을 읍지로 정하였다. 그래서 읍지로 초한 곳은 초읍동이 되었고, 두고보자고 점찍은 땅은 두구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물론 호사가들이 지어낸 것으로 짐작되나 두구동이 평탄하고 좋았음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1968년 종합양계단지로 지정된 후, 양계사업의 발달로 시내의 달걀과 육계의 공급원이 되었다. 두구동은 조리ㆍ죽전ㆍ 대두ㆍ임석ㆍ 중리ㆍ수내ㆍ송정 등 7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두마을이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로 파악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하여 북상 중 유(劉)ㆍ조(趙) 씨 일가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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