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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동의 유래

남산동의 유래

남산동이란 명칭은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줄곧 쓰인 이름이다. 1740년 편찬한 《동래부지》방리조에도 동래부의 북면에 남산리라 하여 동래성에서 거리가 18리로, 《동래부읍지(1832)》 및 《동래군지(1937)》에도 모두 북면의 남산리로 기록되어 있다.

남산동은 남산ㆍ남중ㆍ신암의 3개의 자연마을이 있으며, 남산마을 조금 떨어져 작은 마을로 반남산마을이 있다.

이중 가장 먼저 취락이 형성된 곳이 남산마을로 지세(地勢)가 북이 높고 남쪽이 낮아 집을 지으면 모두 남쪽으로 향하여 남산이라 하였다 한다. 한편, 남산동은 범어사(梵魚寺)의 사전(寺田)을 붙이는 경우가 많아 범어사에서 볼 때 남쪽 산등성이라 하여 남산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신암(新岩)마을은 이 지방사람들이 ‘서근덤’이라 부르는데 썩돌이 많아서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라 한다. 남중마을은 남산마을과 신암마을의 중간에 위치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동래에서는 예부터 이 지방의 물이 좋은 순서를 말하는데, 일 남산, 이 초읍, 삼 연지라 하여 남산의 수질이 으뜸이였으나 청룡동 저수지가 생긴 이후부터는 물이 예전 같지 못하다고 한다. 이 동네의 토박이들은 남산동은 임진왜란 후 남산김씨의 9세대가 이 곳에 씨족마을을 형성하여 마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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